아이들이 집에서 놀다가 넘어지면 주로 얼굴을 다치는데 깜짝 놀란 부모들은 아이들을 응급실로 데리고 온다.
부모들은 아이의 얼굴에 흉이라도 크게 남을까봐 주로 성형외과에서 치료해주기를 원하기 때문에 우리학교병원 성형외과(PS) 1년차 선생님은 거의 응급의학과 전공의 수준으로 응급실에 머무르게 된다. 우리학교는 PS 1년차가 1명뿐이고 이 한명이 365일 응급실 당직을 서야하는지라 가끔 까칠한 면모를 보일 때가 많다. (원래 좋은 선배였는데.,OTL)
아이들이 주로 다쳐서 오는 곳은 얼굴이다, 넘어지면서 모서리나 바닥에 헤딩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주로 다치는 부위는 내가 실습 돌 당시 관찰한 결과 대충 다음과 같았다.

상처를 치료할 때, 깨끗하고 얕은 상처는 Histoacryl이라는 일종의 접착제로 붙인다. 보험은 되지 않아서 재료값으로 7만원 정도를 내야하지만, 당장 내자식이 마취주사때문에 무서워하는 것을 보지 않아도 되고, 이건 주기적으로 소독받으러 병원에 가야 할 필요가 없으니 적응증이 되는 아이의 부모에게 이것을 권유하면 대부분 OK하신다. 이 경우 아이들을 달래는 것은 쉽다.
"꼬매는거 많이 아파요? 주사 맞기 싫은..훌쩍"
"어?? 그냥 소독만 하고 풀로 붙일꺼야~~ 소독만 따끔한데~~"
-상황이 종료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 얼굴을 꼬매야 하는 경우 이야기는 달라진다.
어른들이야(만취자 제외) 본인이 알아서 참지만, 너무도 솔직한 우리의 아이들은 자신의 고통을 온몸으로 표출한다. 아이들이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당연히 봉합이 제대로 될 리가 없기 때문에 대개 부모들을 밖으로 나가게 한 뒤 아이들을 제압하여 봉합을 할 수밖에 없다. pk들이 아이들 얼굴을 봉합할 리가 없다. 우리의 주 임무는 아이를 처치대에 눕혀서 움직이지 못하도록 꽉 잡고 있는 것이다.
꼬마들을 봉합할 때, 병원마다 다르겠지만 우리학교 병원의 경우 멍석말이를 하듯 아이를 포대기에 둘둘 감아 처치대에 올린 뒤, 누군가 처치대 위에 올라가 아이가 못 움직이도록 다리와 어깨를 누른다. 그리고 다른 한사람이 아이의 머리를 꽉잡아버린다. 이 과정 자체는 힘이 들지 않지만(하지만 엄청난 근력을 요구한다), 아이를 포대기에 둘둘 말기까지의 과정이 힘들다. 앉아 있는 아이를 허리를 꺾어서라도 눕힐수는 없기 때문에...... 이 때 거짓말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표정관리도 중요하다. 진지하게, 그러나 상대방을 편안하게 만들 수 있는 미소를 시도때도 없이 날려야 한다.
Step1. 부모 안심시키기
=> 저희가 마취를 하고 꼬매니까 실제로는 아프지는 않는데, 마취주사 놓을 때 좀 아프거든요. 그때 아이들이 많이 울어요. 그래도 그나마 덜 아프라고 주사바늘은 가장 작은 것으로 바꿔서 씁니다.
꼬맬때에는 아프지는 않는데 바늘이 지나가는 느낌이 나서 아이들이 놀라서 울어요. 실제로는 아픈게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꼬맬 때 아이들이 움직이면 흉터가 더 크게 남을 수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저희가 꽉 잡고 있어야 하는데 보고 놀라실 수도 있을 거에요. 그렇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더 잘 봉합할 수 있습니다.(거짓말 아님)
Step2. 거짓말 Induction
=>이름이 현진이야? 현진아.. 너 얼굴에 이거 피나는거 있지?? 여기에 지금 벌레가 득실득실 하거든. 이거 지금 벌레 안잡으면 큰일나! (눈높이를 맞추는 것이 포인트임. 그런데 별로 안통한다... 아이들이 많이 영악해서. 그렇지만 다음 단계를 위한 초석이 된다.)
Step3. 사회화 과정을 이용한 거짓말
=> 너 이거 벌레 안잡으면, 유치원 친구들이 얼레리꼴레리한대~~
그러면 남자친구도 안생길껄~~!
유치원 선생님도 너 얼굴 벌레 안잡으면 깜짝 놀라서 얼레리꼴레리 할텐데~~~ 우와~~ 여기 너희 엄마도 깜짝 놀라잖아~~
(이 정도면 눈치 빠른 엄마들도 아이놀리기에 동참하시는 분들이 있다. 그러면 아이들 2/3에서 순간 몸에 힘을 뺀다. 이 순간 얼른 포대기로 둘둘 말아버린다. 이 때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표정을 진지하게 관리해야 한다.)
Step 4. 방송매체를 이용한 거짓말
=> 텔레비젼 보면 예쁜 언니들(or 잘생긴 형아들) 많이 나오지?? 누가 제일 예뻐? 그 언니들도 다 얼굴 벌레잡고 예뻐진건데~~ 너 지금 벌레 안잡으면 안예뻐져~ 그럼 나중에 잘생긴 남자친구 안생긴단다.
==> 3단계와 4단계를 거치면 대부분 아이들이 순간적으로 몸에 힘을 빼는 순간이 있다. 그 때 순식간에 아이들을 눕히고 포대기로 말아버리면, 꼬마들은 그제서야 속았다는 것을 알아채고 발악하지만 그 때 이미 2명의 성인에게 제압당한 뒤다.
봉합하는 도중 아이들은 울고불고 그만하라고 난리를 친다. 그럴때에는
꼬마 : 엉엉~~ 그만해요~~
카이 : (아이를 꽉 잡고 있으면서) 응~ 이제 절반정도 했어.
꼬마 : 정말요??
전공의 : 야.. 이제 한땀떴는데 무슨 절반이야?
카이 : 시작이 반이잖아요.
전공의 : o_O;;;; 저 사기꾼같으니. 내가 너한테 한수 배우고 간다.
Step 5 : 뇌물공세
꼬마 : (처치가 다 끝난 뒤)엉엉엉..흑흑
카이 : 잘 참았네~ 다끝났는데 왜 울어. 옛다.. 여기 사탕
꼬마 : 쪽쪽~ 흑흑~훌쩍~ 쪽쪽쪽~훌쩍~츄르릅
주머니가 텅 비어 뇌물공세 스킬을 시전하지 못한 경우 모든 치료가 끝난 꼬마님들은 모두 날 한두번씩 째려보고 병원을 나간다. 참고로 이 때 사탕들은 내 사비로 구입한 것이었다. (사실은 내가 먹으려고 가지고 다닌 것이었다)
지금 쓴 글이 어쩌면 장난같아 보일 수도 있다. 혹시 응급실에서 당신의 자녀가 이런 일을 겪었다면 지금 이 글을 보고 "이런 장난 같은 글을 올리는 놈이 의사가 될 놈이라니!" 라고 화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어린 아이의 상처를 봉합하는 것은 성인에게 하는 것 보다 더 힘이 든다. 아직 초등학교도 안 간 아이들에게 무조건 참으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또 부모들이 "흉터가 생길까봐" 노심초사하여 응급실의 전공의나 인턴에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치시 아이들이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당연히 봉합이 잘 될리가 없기 때문에 부모의 마음이 아프더라도 강제로라도 잡고 있어야 한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아이들이 다치치 않고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겠지만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것은 알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얼굴을 다친 아이들을 응급실로 데리고 오는 부모님들께 부탁하고 싶은 말이 있다.
아직 너무도 어린 꼬마들이기 때문에 자녀들은 분명히 아프고 힘들다며 부모에게 온갖 응석을 부린다. 정말 일부의 부모들이 그것을 모두 오냐오냐 하며 100% 다 받아주고 거꾸로 "우리 아이가 우는데 왜 아무것도 안해주느냐"라고 화를 내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 정말 할 말이 없다. 아이가 울면서 부모에게 달라붙어 있는데 뭘 어떻게 해줄 수 있단 말인가. 내 앞에서 울고 있는 자식 때문에 당장 마음이 아프고 혼란스럽더라도 아이가 빨리 치료를 받고 병원을 나설 수 있도록 아이들을 설득하는데 도와준다면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http://kaine.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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