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_박완서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11. 24. 23:30
소도 있었다고 한다. 소가 있을 때는 할아버지가 손수 농사를 지었을까. 아니면 머슴을 두었을까. 소를 애완용으로 기르지는 않았을 게 아닌가. 소가 송아지를 낳았다고 했다. 암소였던 모양이다. 송아지가 젖 떨어질 무렵 우시장에 내다 팔았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목돈을 챙겼을 것이다. 새끼를 잃은 어미소가 여물도 안 먹고 슬피 울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다시 우시장으로 가 당신의 송아지를 사간 이를 수소문해 찾아내어 손에 쥔 목돈에다 웃돈을 얹어서 되사왔다고 했다. 내가 그 소리에 감동했던 건 처음 들어보는 소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디선가 들어본 소리, 우리 시골에서도 그런 일은 드물지 않았다. 매사를 자연 질서 그대로 지키며 살았던 시대에나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럼 내가 근래에 <워낭 소리>를 보면서 느낀 감동은 뭘까. 그건 아마도 끝까지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인간처럼 자연사해서 인간처럼 무덤을 가지게 된, 그러나 자연질서에는 어긋난 삶을 살다 간 소에 대한 측은지심이었을 뿐 인간에 대한 감동은 아니었다.